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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배가 항구에 접안하듯
큰 사랑은 죽을 만큼 느리게 온다
나를 이끌어다오 작은 몸이여,
온 몸의 힘 다 내려놓고
예인선 따라 가는 거대한 배처럼
큰 사랑은 그리 순하고 조심스럽게 온다
죽음에 가까운 속도로 온다

가도 가도 망망한 바다
전속력으로 달려왔으나
...
그대에 닿기는 이리 힘들구나
서두르지 마라
나도 죽을 만치 숨죽이고 그대에게 가고 있다
서러워하지 마라
이번 생엔 그대에게 다는 못 닿을 수도 있다


- 「데드 슬로우」 김해자 詩

이 시가 어찌나 마음을 울리던지... 배를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시로 쓰는 사람의 산문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철학보다 인간미가 넘치고 다른 이웃들과 나누면서 지내는 인생의 행복함을 맛볼 수 있네요. 나눠 주는 삶이라기 보다 나눔을 받는 삶이긴 하지만요.^^

어렸을 적 깡촌에 살던(지금도 마을버스 2대 들어가는) 제 기억에 시골과 마을은 꿈꾸는 이상향이 되어 있습니다. 주변의 풍경이나 봄날 보릿단에 누워 느끼던 따사로움도 있었겠지만 지금에서 생각하니 집 대문앞에 나서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낯익은 이웃이었던 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점점 자라면서 읍내로 나오고 도시에서 지내면서 걸음 걸음 스치는 이웃들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현실 속에 사라갑니다. 그러다 보니 마을 기업, 지역 공동체 등등의 이웃찾기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나 봅니다. 저도 그런데 당연히 마음이 가다보니 여기 저기 기웃거리게 됩니다.

김해자시인의 글은 이 분의 마음 속에 있는 따스함이 주변에 어떻게 전달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다가오는 지 이웃을 구하고 이웃이 되어주기 위해 어떤 마음 씀씀이와 노력, 생각이 필요한 지 알게 만들어 줍니다. 주변 이웃들의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 우스운 이야기들이 "시인의 통찰력과 단단한 필력"으로 엮어지니 이토록 매력있고 맛깔난 이야기로 들려옵니다.

저도 읽고 주변에 이 사람 저 사람 추천하니 다들 즐겁게 보시네요.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더운 여름에 마시는 청량음료 한 잔처럼 시원한 휴식이 될 것 같습니다.^^

 

아까워서 아직 끝까지 다 읽지 않고 베갯머리 맡에 두고 한 꼭지씩 읽어가며 잠들기 전 마지막 휴식 시간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아래는 길담서원에 올려진 책 소개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

 

 

 

_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

전라북도 전주에서 이웃 할머니들이 나눠준 씨앗을 심고 자투리 천으로 바느질을 하면서 때로 우습고 아프고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김해자 시인. 드넓은 밭을 혼자서 경작하는데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 콩할머니, 뚱딴지감자라면 죽고 못 사는 마이뚱 씨, 나무와 말을 하는 여자, 무엇이든 더 줄 것 없나 고심하는 나무 아저씨, 저들만의 세계와 언어를 가진 아이들, 세상으로 나서길 주저하는 청년들……. 각자가 조금씩 다르고 이상한 사람들이다. 풀벌레와 말을 하고 얻어먹기를 좋아하는 시인 자신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책에는 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사람들, 그가 다가가 하나가 된 자연, 세상의 이야기가 구체적인 사건들과 함께 기록된다.

 

 

오늘도 일하고 먹고 만나며 늙어가는 실체와 생활과 사유로 밀도 가득한 김해자 시인의 글은 잊고 있던 인간의 착하고 단단한 본성을 재발견해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은 깊은 안도와 위로,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로 다져진 작가의 탄탄한 필력과 삶을 대하는 진정어린 그의 태도가 녹아 있는 글은 한국 에세이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겠다.

 

 

 

 

 

_유일무이하고 이상하기 그지없는 나를 찾아서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에서 시인은 시종 포기할 수 없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연민,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는 인간 본성에 천착한다. 병든 도시를 병든 몸으로 떠나 스스로 운둔자가 된 시인의 화두는 여전히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인가?”이다. 그에 대한 하나의 정답은 없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해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과장하거나 방어하는 일 없이, 선악이나 도덕의 잣대에 비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참된 자기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 참된 자기가 유일무이하고 이상하기 그지없는 바로 .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고유성을 되찾을 때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분별과 분리로부터 오는 오해와 상처에서 자유로워지고, 삶으로부터 소외된 자신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이질적인 것들끼리 만나야 새로운 것을 낳고,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야 생명이 잉태되듯이 이상한 나와 이상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_불안한 존재들을 위한 지금 여기에서의 사랑법

자신의 삶에서는 주인공이지만 과로하기 마련인 문명 속에서 어느 순간 일로부터, 관계로부터 소외되어 가는 현대인들은,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가 감당해야 할 삶을 치르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더 외로운 사람들은 삶이 애초에 이리 어려운 것이었던가?’ 싶다.

 

 

시인은 오직 사랑만이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저 생긴 대로 본성을 드러내도 두렵지 않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또한 진정한 사랑은 사랑과 삶을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삶에 대한 사랑은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핵심이다. 오늘 여기에서의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타인에 대한 사랑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진실되지는 않은 것이다.

 

 

아픔에 저항이 곱해져야 고통이 된다고 한다. 힘겨운 감정 또한 저항과 억압이 곱해져야 파괴적 감정에 이른다고 한다. 너와 나의 구분, 옳고 그름을 가르는 분별을 내려놓고 나에게 온 상황을 그저 바라볼 일이다. 저항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아픔도 잠시잠깐 존재하다 그냥 지나간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아픔조차도 무의미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나에게 주어진 고통을 과장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의 노동과 하루치의 기쁨이면 족한 것이다.

 

 

 

 

 

_아파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공감과 위로

한창훈의 소설 꽃의 나라에는 서로 다른 관계, 다른 역할을 하는 친구의 가족들을 보고 너희 집 참 이상하다고 말하는 세 친구가 등장한다. 나와 타자의 구분,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의 방식들 때문에 이상하다고 말한다면, 그들 각자가 고유한 자기를 잃지 않아서 듣는 소리라면 세상에는 더 많은 이상한 사람들이 살아도 좋을 것이다. 흙이 단단하고 풍부해야 나무가 강하게 치고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상생과 상극이 순환할 때 나무는 더 나무다워지고 숲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오늘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각자가 다 이상하길 기대해본다.

 

 

김해자 시인의 글은 어쩌면 고집스러워 보인다. 순발력을 요구하는 시대에 때로 너무 진지한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감각적인 신진 에세이스트들의 글에 비하면 소박하기까지 하지만 그만큼 삶과 사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의 글과 삶을 관조하는 시선은 담담하면서도 울림이 크다. 있는 그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와 이 시대의 사람들 이야기를 읽다보면 유머러스함 속에서도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다. 그 글에서 우리는 웃고 있지만 슬픔을 느끼고, 슬픔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글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쓰는 자와 담긴 자가 다르지 않은 김해자 시인의 글은 많은 깨달은 이들이 전하는 공감과 위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실체가 있는 반성과 처방이 되어 독자들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지은이 김해자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조립공 미싱사 학원강사를 하며 노동자들과 시를 쓰다 1998년에 등단하여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민중열전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펴내고 전태일문학상과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김해자 시인의 최근 5년 동안의 이름은 나르시소스. 자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식음을 전폐하고 타자의 소리를 듣지 못한 신화 속의 미소년이 아니라 자기를 진실로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자만이 자기 안에 들어온 모든 형상과 형상 너머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노동자, 장애인, 사회운동가 들과 함께 문학과 예술치료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짬짬이 농사를 짓고 바느질을 하며 사는 노동자 나르시소스는 물속에 비친 자신과 세상과 사람들의 활동사진을 모은 책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다 이상했다를 기점으로 노동과 놀이와 밥이 일치하는 코뮤니타스를 본격적으로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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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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